황진이와 서경덕, 화담 서경덕 선생의 일화와 명언에서 배우다.
본문 바로가기
짧고 좋은 글귀

황진이와 서경덕, 화담 서경덕 선생의 일화와 명언에서 배우다.

by richdoit 2023. 5. 10.

화담 서경덕 선생은 조선 중기의 주기론 유학자로서, 스승 없이 독학으로 사서육경을 연마하고 정치에 관심을 끊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일생을 바쳤다. 그의 특이한 독학 방법은 벽에 한자를 붙이고 그 한자와 세상과의 관계를 궁리하였다고 한다. 그의 철학은 철저한 주기론이며 태허설이라고도 한다. 그는 기가 모이면 물질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태허가 된다고 보았다. 이때 태허라는 것은 기가 띄엄띄엄 흩어져 지각되지 않는 상태이며 소멸한 무의 상태가 아니다. 이 때문에 그의 철학은 지극히 현세 지향적인 성격을 띠며 그가 불교 철학을 비판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이 글에서는 서경덕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간단히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일화와 명언을 몇 가지 들어보면서 마지막으로 현대인들이 그의 일화와 명언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합니다.

 

새-나는새
날으는 새

 

 

화담 서경덕 선생의 일화와 명언

 

1. 서경덕 선생의 생애

서경덕 선생은 1489년 음력 2월 17일 개성 화정리에서 무관인 수의부위를 지낸 서호번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당성, 자는 가구, 호는 복재 또는 화담이다.

 

그의 선조들은 대대로 풍덕군에 살았다. 증조부 서득부는 관직이 없었고, 할아버지 서순경은 진용교위 부사용을 지냈다. 아버지 서호번은 개성에 사는 보인한씨에게 장가들면서 개성으로 이주했다 한다.

 

그는 기억력이 뛰어났고, 일찍부터 말과 글을 누가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터득해서 쓰기 시작하였다. 나이 7∼8세에 이르자 총명하고 영특하여 어른의 말을 공경히 받들었다. 그 뒤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것이 전부였고, 스승 없이 스스로 학문 연구와 사색에 몰두하였다. 그는 영특하였으나 가계가 빈곤하여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14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유학 경전인 상서를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1502년 (14세) 서경을 배우다가 태음력의 수학적 계산인 일월운행의 도수에 의문이 생기자 보름동안 궁리하여 스스로 해득하였다. 이것은 그의 총명함과 끈기를 보여주는 일화이다. 18세 때 대학의 치지재격물조를 읽다가 “학문을 하면서 먼저 격물을 하지 않으면 글을 읽어서 어디에 쓰리오!”라고 탄식하고, 천지만물의 이름을 벽에다 써 붙여 두고 날마다 궁구 하기를 힘썼다. 이것은 그의 독특한 독학 방법을 보여주는 명언이다.

 

그는 젊어서 적극적이던 학습 방법과 지나친 독서와 사색 탓으로 과로에 지쳐 다시는 책을 손에 잡을 수 없을 만큼 몸을 상했고, 이 때문에 21세 때에는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하고 1년여 동안 전국의 명산을 돌아다니며 건강을 회복하는데 주력해야만 했다. 그는 수년간 요양한 뒤 개성에 돌아와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는 31세 때 조광조 등에 의해 채택된 현량과에 응시하도록 수석으로 추천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개성 오관산 화담에 서재를 세우고 연구와 교육에 더욱 힘썼다. 이것은 그의 학문적인 열정과 정치적인 무관심을 나타내는 일화이다.

 

 

2. 서경덕 선생의 사상

서경덕 선생의 사상은 철저한 주기론이며 태허설이라고도 한다. 그는 기가 모이면 물질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태허가 된다고 보았다. 이때 태허라는 것은 기가 띄엄띄엄 흩어져 지각되지 않는 상태이며 소멸한 무의 상태가 아니다. 이 때문에 그의 철학은 지극히 현세 지향적인 성격을 띠며 그가 불교 철학을 비판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그는 기의 순환을 통해 우주론을 설명했다 하더라도 이를 인륜에 적용시켜야 하는 유학의 기본 입장상 이가 단순히 자연 이치로 머문다면 이는 바람직한 철학이라고 볼 수 없었다. 때문에 생전의 서경덕은 이황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이와 기를 포괄적으로 설명한 주기론자 이이의 철학이 등장하면서 조선 주기론은 이이 철학 중심으로 흐르게 된다.

 

그는 노장 사상과 불교에 대한 이해 또한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에 대한 비판 또한 제기한 바 있다. 이것은 그의 폭넓은 학식과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사실이다. 그는 노장 사상에서 기와 물질의 관계를 인용하면서도 노장의 자연수용론과 무위도인을 부정하였다. 그는 불교에서 기와 공의 관계를 인용하면서도 불교의 세계관과 업과 법을 부정하였다. 그는 유학에서 기와 성리의 관계를 인용하면서도 성리학의 성리론과 정신론을 부정하였다.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주기론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는 또한 시인이자 문장가로서 많은 시문을 남겼다. 그의 시문은 그의 철학과 인생관을 잘 반영하며, 우아하고 감각적인 어법과 은유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그의 예술적인 감성과 표현력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는 특히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많이 썼으며, 자연을 즐기고 사랑하는 모습이 돋보인다. 그는 자신의 시문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인 사유와 감정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그는 또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그의 제자 중에 유명한 사람으로는 토정비결로 잘 알려진 이지함이 있다. 이지함 또한 농업과 상업의 병진론을 주장하는 등 당시 사상가 중에서 획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그의 교육적인 영향력과 혁신적인 사상을 보여주는 예이다.

 

 

3. 서경덕 선생의 일화와 명언

황진이와의 일화

서경덕 선생은 평생 여색을 멀리했는데, 개성 최고의 유명한 기생 황진이는 그를 시험하고자 일부러 비가 오는 싸늘한 날에는 자신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교태를 부리며 유혹하였으나 서경덕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의 인품에 감격한 황진이는 그를 스승 겸 서신과 시문을 주고받는 사이로 남았다는 설이 있다. 이것은 그와 황진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이다.

 

죽음을 초월한 일화

그는 박연폭포, 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로도 유명하다. 마지막 순간에는 "살고 죽는 이치를 깨달은 지 오래니 편안할 뿐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그의 철학적인 태도와 평안한 마음을 나타내는 명언이다.

 

종달새 일화

종달새 울음소리를 듣고 하루종일 이를 탐구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것은 그가 기를 탐구해 그 속에 숨은 이를 찾으려 하는 서경덕 철학을 잘 반영한 일화인 것이다.

 

푸성귀 일화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밭에 나가 푸성귀를 좀 뜯어오라고 하자, 그는 광주리의 반도 차지 않을 정도의 푸성귀만 가지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푸성귀를 제대로 뜯지 못한 연유를 물었다. “새가 땅에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하루 종일 그 이유만을 생각하다가 그만 푸성귀 뜯는 일을 잊어버렸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그의 사색적인 성향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4. 현대인들이 배워야 할 점

화담 서경덕 선생의 일화와 명언에서 현대인들이 배워야 할 점

 

첫째

스스로 학문을 연마하고 사색하는 태도이다. 서경덕 선생은 스승 없이 독학으로 사서육경을 익혔으며, 벽에 한자를 붙여 두고 그 한자와 세상과의 관계를 궁리하였다. 그는 자신의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생각하였다. 현대인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의 편리한 정보 수단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신의 두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자신의 관심사와 질문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해야 한다.

 

둘째

현세 지향적인 철학과 인생관이다. 서경덕 선생은 기가 모이면 물질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태허가 된다고 보았다. 이때 태허라는 것은 기가 띄엄띄엄 흩어져 지각되지 않는 상태이며 소멸한 무의 상태가 아니다. 이 때문에 그의 철학은 지극히 현세 지향적인 성격을 띠며 그가 불교 철학을 비판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현대인들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기 위해 초월적인 것에 의존하기보다는 현재의 삶과 세상에 집중하고, 삶의 다양면성과 변화성을 인식하고 적응해야 한다.

 

셋째

인품과 품격을 지키는 태도이다. 서경덕 선생은 평생 여색을 멀리했으며, 유혹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바탕으로 살았으며, 학문과 예술에 헌신하였다. 현대인들은 윤리와 도덕을 잃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취향을 존중하고,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발휘해야 한다.

 

넷째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태도이다. 서경덕 선생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많이 썼으며, 자연을 즐기고 사랑하는 모습이 돋보인다. 그는 자연의 기운과 법칙을 이해하고자 하였으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바랐다. 현대인들은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키지 않고, 자연을 보호하고 존중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이상으로 화담 서경덕 선생의 일화와 명언에서 현대인들이 배워야 할 점에 대해 강조해 보았습니다. 서경덕 선생은 조선 중기의 주기론 유학자로서 스스로 학문을 연마하고 사색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일화와 명언은 그의 인품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현대인들은 그의 일화와 명언에서 배운 바를 실천하여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반응형